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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부story-미디어산업/셀럽을 위하여

홍석천의 새로운 10년을 기대하며(feat.코로나19 바이러스)

by 덴부와 셜리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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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자영업에 큰 타격을 받아서 걱정이 많죠.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최근 sns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자진해서 바이러스 검사 받을 분들 받으시라고,

그리고 나한테 방송국앞에서 출연 금지 시위를 하던, 악플을 달던 상관없다고 했다.

.......(홍석천의 글)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있으니까여 이런 글을 올린다고 제 가게앞에서 시위하셔도됩니다

어차피 덕분에 몇달째 수천만원씩 적자나서 문닫을 판이니까여 아님 제가 출연하는 방송국앞에서 출연반대시위하셔도 뭐 어쩔수없죠 그런거잘하시죠?그딴거 두렵지않습니다 단체로 악플보내시려구요?

네네 이미 20년동안 별별 악플 다 받아봐서 견딜만하니 대충하시구요 (이하 생략...)

 

저는 홍석천을 지지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살아온 생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그는 게이이기 전에, 배우이고 연예인일 뿐이다.

 

홍석천이 커밍아웃했다. 당했다. 커밍아웃을 하고 10년의 세월, 인고의 세월을 거쳐 지금은 사업가로 그리고 방송인으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러나 새삼스러울게 없는 게 그는 연기자로 우리 앞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그냥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대중문화와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라는 스펙트럼을 넓힌 큰 공은 있지만, 그에게는 10년을 버텨야하는 아픔이 있었다.

 

2000년에 커밍아웃하고,

심지어 그해 국회 참고인 보건복지위 국정감사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국정감사까지 출두하라 했을 까. (실제로 국정감사에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공개된 수모일까. 왜,  연예인에게 무슨 죄를 지었다고 국회까지 나오라고 하나하는 생각을 해밨었다. 그렇게 많은 매체들과 사람들이 손가락질이 그에게 시작되었다.

난 여기서 동성애 이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버텨야할 10년을 말하고 있다. 10년 지나서야 그의 인터뷰들이 매체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홍석천(사진출처:중앙일보)

2. 그가 뽀뽀뽀를 그만두며 한 말,  나는 그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가 커밍아웃을 할 즈음, 그는 어린이프로그램 진행자였다. 뽀뽀뽀.

지금은 보니하니가 대단한 인기지만, 그 프로그램은 어린이 종합교양물의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다.  

아직도 나이가 지긋한 코미디언 김병조, 이용식을 뽀병이 뽀식이로 기억하니까.

 

그가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을 할 때,

"함께 프로그램을 한 어린아이들이 생각났다고 했다"는 인터뷰기사를 본적이 있다.

한편에서는 어린아이를 게이로 만들거냐라는 시청자 항의가 빗발쳤지만,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어느 인터뷰 내용을 보니까,

그는 아이들을 보며 거짓말하지말라고 말을 하곤 했는 데, 내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라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도덕적 신념이,

신의와 의리, 참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꼭 빛을 보리라 생각했다.

그 마음이 전해져오는 듯했고, 반드시 꼭 다시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 후, 홍석천은 TIME지 선정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선정된바 있다(2004년, TIME 아시아판 사진 참조)

 

 

3. 인생은 돌고 도는 것

 

그가 칩거하는 동안, 말보로 레드 독한것을 하루에 4갑을 답답해서 피웠다는 기사도 봤고

또한 나는 클럽에서 디제임하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무대에서 춤추며 디제잉하는 그를 보며,  ‘먹고 살려고 힘들겠다.’가 아니라 무언가 지금 준비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에서 그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았다.

 

나중에 토크쇼에서 음식점 운영하면서, 직원들 월급과 운영비를 벌기위해 밤새 일하고,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클럽에 가서 돈을 벌어 충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4. 10년, 말이 쉽지.

 

10년 마다 바뀌는 운세인지 모르겠다. 명리학에서는 10년마다 대운이 바뀐다고 하더라.

10년을 버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독한 말보로 레드 담배를 하루에 몇갑씩 피며 막막한 인생을 돌아보며 홍석천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예계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로 시작하고, 모자른 부분을 자신의 재능으로 보완하는 것, 다시 재기를 위해 준비하는 것. 이것이 막막한 10년을 버텨낸 것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커밍아웃할 때 다짐. 거짓말을 하지 말자. 이게 아주 단순하지만 성공을 일으키는 힘 아닐까.

즉 삶을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의 견고함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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